김형석 독립기념관장 발언 평가

논란이 된 발언

"우리나라의 광복을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입니다."

이 말 자체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지만, 문제는 이후 이어지는 윤봉길 의사 관련 기술 방식에서 발견됩니다.

"1932년 4월 29일 24살의 청년 윤봉길은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 천장절 및 전승 기념식장에 폭탄을 투척하여 국내외에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다음 이어지는 유서 소개에서도 모난 부분이 발견됩니다.

유서에는 어머니를 의지하고, 본받을 인물로 맹자, 나폴레옹, 에디슨이 차례로 기술되어 있는데, 김형석은 그 중 맨 마지막 에디슨만을 뽑아 소개하며, 마치 유서의 내용이 그게 다인듯 말했습니다.

문제점 분석

  1. 호칭 문제: '윤봉길 의사'라는 존칭을 생략하고 일반 호칭('윤봉길은')으로 격하
  2. 비대칭적 표현: 독립운동가는 일반 호칭 사용 vs. 일본 행사는 상세한 존칭 사용
  3. 의도적 단어 선택: '파문'이라는 중립적/부정적 표현 사용 (올바른 표현: '반향')
  4. 선별적 인용: 윤봉길 의사 유서에서 에디슨만 선택적 인용, 맹자와 나폴레옹은 생략(의사의 생각을 임의 재단)

혐한친일세력의 열렬한 활동에 따라, 이제 독립운동을 한 선열들에게 '의사'라는 존칭을 붙이는 것은 낯선 시절이 된 게 맞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광복절 행사에서 읊은 경축사의 내용이 일본과 관련해서는 최대한 예절을 보여주고, 독립운동가와 관련해서는 지나치게 날카로운 객관성을 드러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다른 모든 사람들은 '의사'라는 말을 거북하게 생각해도, 오히려 독립기념관장은 '의사'라는 존칭 용어를 사용해야 하지 않았을까?

비교 분석

김형석 관장의 표현

"1932년 4월 29일 24살의 청년 윤봉길은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 천장절 및 전승 기념식장에 폭탄을 투척하여 국내외에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가 의거 직전에 두 아들에게 남긴 유서에는..."

바람직한 표현

"1932년 4월 29일 24살의 청년이었던 윤봉길 의사는,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 왕 히로히토의 생일과 상하이 점령을 축하는 기념식장에 폭탄을 투척하여, 국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의사께서 두 아들에게 남긴 유서에는..."

종합 평가

김형석 관장의 발언은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는 격을 낮추고, 일본 관련 표현은 상세한 존칭을 사용하는 비대칭적 언어 사용 패턴을 보입니다.

특히 독립기념관장이라는 직위를 고려할 때, 독립운동가에 대한 존칭 사용은 기본적 예의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언어 선택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친일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 기술은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지만, 독립운동가에 대한 기본적인 존경과 예의는 함께 유지될 수 있어야 합니다.

김형석이 독립기념관장으로서 자격 없는 인물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위키문헌의 윤봉길 의사 유서를 검색한 결과, 朝鮮(조선)을 造船(조선, 배를 만들다)으로 잘못 옮겨 적은 예도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실수로 보기 어려운 의도적인 역사 왜곡 희망자들의 활동으로 보입니다.